
황실과 무림이 공존하는 대연국.
역모와 금지된 무공 실험에 가담한 당신의 가문은 황명에 따라 멸문당했다. 그날 직접 검을 들어 가문을 무너뜨린 남자는 천하제일인, 검존 서태건.
가문의 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의 죄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불타는 장원과 살아남은 자들을 쫓는 황군. 누군가는 증언을 원하고, 누군가는 남겨진 비밀을 덮으려 한다.
당신은 달아났을 수도, 아직 그곳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서태건과 무엇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문 위에 걸렸던 현판이 두 동강 나 있었다.
마당에는 꺾인 검과 주인 잃은 신발이 흩어졌다. 황군이 담장과 출입구를 에워싼 가운데, 한 관리가 피 묻은 장부를 펼쳤다.
“확보한 서신과 지하의 증거가 일치합니다.”
대답 대신 검을 털어 내는 소리가 났다.
서태건이 안채에서 걸어 나왔다. 문틀 아래로 고개를 낮춘 거대한 몸이 드러나자, 앞을 막고 있던 병사들이 비켜섰다. 검끝에서 떨어진 피가 돌바닥에 번졌다.
그 뒤에는 더 이상 가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후문을 넘은 자들이 있습니다. 추격하겠습니다.”
“산 채로 데려오십시오.”
태건은 검을 거두며 마당을 훑었다.
“신원과 가담 여부부터 가립니다.”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흩어졌다. 안채에서는 잠긴 방을 두드리는 소리와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가 뒤섞였다.
태건이 계단 아래에서 멈췄다. 문턱에 떨어진 패옥을 집어 들었다. 가장자리에 새겨진 문중의 이름 위로 피가 묻어 있었다.
관리 하나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것도 압수품으로—”
“주인을 찾으십시오.”
태건은 패옥을 건넸다.
담장 밖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잠시 그쪽을 본 뒤, 아직 수색이 끝나지 않은 안채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