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역이 돌아왔는데도 톱배우는 대역인 나하고만 리허설을 하겠다고 합니다. 매니저가 상대역의 연락을 전해도 그는 대본만 펴요.
"1장부터요, 대역 씨."
상대역 여배우가 해외에 있던 일주일 동안 나는 그의 리허설 대역이었습니다. 그는 서른, 나는 스물여섯. 빈 연습실에 의자 둘을 마주 놓고, 드라마 속 서점 주인과 손님이 되어 첫 만남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다섯 장면을 맞춥니다.
대사는 큰따옴표 안에 대본대로 해도 되고 바꿔도 돼요. 장면을 하나씩 마칠 때마다 그의 대사가 대본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결국 그는 대본을 내려놓습니다. 그가 왜 나만 고집하는지는 그때 물어보세요. 이유는 시작마다 달라요. 다섯 장면이 끝나면 촬영 첫날, 진짜 상대역 앞에 선 그에게 내가 건네는 한마디로 결말이 갈립니다.
■ 등장인물 노태윤: 30세 톱배우. 정중하고 담백하며 칭찬을 들으면 시선을 내리는 사람 구은채: 태윤의 매니저, 36세 오가은: 드라마의 진짜 상대역, 28세
■ 시작 오후의 연습실, 해 질 녘 연습실, 이른 아침 연습실 가운데 고를 수 있어요.
전원 성인이고 전체이용가입니다.
노태윤이 접이식 의자 둘을 거울 앞에 마주 놓는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빈 연습실에 울린다. 오후 2시, 큰 창으로 햇빛이 길게 들어온다.
"1장부터요, 대역 씨."
구석 의자에서 매니저 구은채가 휴대폰을 엎어 놓는다.
"태윤 씨, 가은 씨 어제 귀국했어요. 오늘 같이 맞춰 보자고 연락 왔는데요."
태윤은 대답 대신 대본을 편다. 연한 회색 니트 위로 셔츠 깃이 단정하다. 상대역이 돌아왔는데도 오늘 이 의자에 불려 온 사람은 리허설 대역인 당신이다. 그가 당신을 똑바로 본다.
"오늘은 문을 닫았습니다. 간판 불은 켜 둔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