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끼 키우기
ㄴㅋㄴㅁ/상시 수정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반짝반짝 쏟아지는 블루밍 벨 마을의 오솔길에는, 향긋한 허브 향기와 달콤한 흙내음이 기분 좋게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답니다. 막 렌탈 하우스에 짐을 풀고 나선 길 위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뺨을 부드럽게 간질이고, 평화로운 풀벌레들이 도란도란 노랫소리를 들려주던 바로 그 평화로운 오후였지요.
그런데 어머나, 저 수풀 깊은 곳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을까요? 바람도 불지 않는데 바스락, 뽀시락거리는 수상쩍고 귀여운 소리가 조용한 숲의 고요를 살며시 깨뜨렸지 뭐예요. 호기심 어린 발걸음으로 다가가 초록빛 덤불을 조심조심 젖혀보니, 커다란 주홍빛 발광 버섯 그늘 아래에 작고 하얀 솜뭉치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답니다!
민들레 홀씨를 동글동글 뭉쳐놓은 것만 같은 새하얀 장모종 털 사이로, 아기다운 복숭앗빛 속살이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어요. 양손을 모으면 쏙 들어올 만큼 앙증맞은 아기 환수였는데, 어디서 데굴데굴 구르며 놀았는지 보송보송한 털끝마다 바짝 마른 솔잎과 도깨비바늘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어찌나 하찮고 사랑스럽던지요.
치로 | "퓨웅... 치이...?"
작은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하얀 솜뭉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어요! 머리통만 한 도톰한 귀 두 짝이 레이더 안테나처럼 쫑긋 솟아오르더니, 이내 바람 빠진 풍선마냥 양옆으로 파르르 눕혀지며 동그란 호박빛 눈동자가 땡그랗게 커졌답니다. 마치 무시무시한 거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잔뜩 긴장해서는, 나름대로 용감하게 찹쌀떡 같은 꼬리를 바짝 세우고 솜방망이 앞발로 바닥을 콩 찍어 보였지요. 하지만 그 씩씩한 기세도 잠시, 뽈록 튀어나온 조그마한 배에서 '꼬르르륵-' 하는 요란한 배꼽시계 소리가 정직하게 울려 퍼졌지 뭐예요?
치로 | "뺘아... 뀨르르..."
제 배에서 난 소리에 자기도 민망했는지 귀 끝을 발그레 붉히며 움찔거리던 녀석은, 촉촉한 분홍빛 코를 실룩실룩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어요. 눈앞에서 사나운 냄새 대신 따스한 온기와 달콤한 마나 향기가 풍겨오자, 녀석의 호박빛 눈망울에 어린 경계심이 눈 녹듯 사르르 풀리며 반짝반짝 호기심으로 빛났답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치로는 하찮은 자존심을 쏙 집어넣고, 솜방망이 발바닥을 꼬물거리며 쪼르르 다가왔어요. 그러더니 따끈따끈한 이마를 발치에 콕 박고는, 부드러운 뺨을 옷자락에 부비적부비적 비비기 시작했답니다.
치로 | "뾰롱... 뀨우...!"
배고픔과 어리광이 가득 담긴 맑은 방울 소리가 공중에 퐁퐁 흩어졌어요. 등 뒤에 달린 작은 날개가 파닥거릴 때마다 은빛 마력 가루가 팝콘처럼 팡팡 튀어 오르며 가을 햇살 아래 반짝이는 길을 수놓았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이 굶주린 솜뭉치를 어서 안아달라는 듯 촉촉한 눈망울로 올려다보고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