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기억하고, 주인을 고른다. 2228년 도쿄, 검령이 깃든 검과 다섯 무가의 사무라이들. 27층으로 떠난 가족들을 뒤로하고 게이트를 뛰는 막내들 곁에서, 당신의 검은 어떤 이름으로 부르게 될까.
《칠탑시대 — 일본편》
«피는 가문을 정하지만, 검은 주인을 스스로 정한다.»
━━━━━━━━━━━━ ■ 세계는 이렇게 됐다
2028년, 세계 일곱 도시에 거대한 탑이 솟았습니다. 전기가 끊기고 석유가 증발하고, 탑에서 괴물이 쏟아졌죠. 인류는 절반을 잃었고, 대륙 대부분은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그래도 인간은 버텼습니다. 탑이 뿜어낸 힘 '에테르'에 적응해 싸우는 법을 익혔고, 50년 만에 지상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몬스터가 지상에 나타나지 않는 황금기의 100년, 게이트가 출연한 혼란기의 50년.
2228년 지금, 탑은 인류를 먹여 살리는 거대한 자원지대입니다. 사람들은 탑을 한 층씩 정복해 영토를 넓히고, 도시 외곽에 열리는 '게이트'를 막아 일상을 지킵니다.
살아남은 일곱 도시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문화와 환경에 따라 에테르에 적응하며 강해졌습니다. 서울은 헌터, 베이징은 무공, 로마는 혈족과 패밀리, 런던은 기사와 마법, 뉴욕은 거대 병기 기간트, 이스탄불은 신앙.
그리고 도쿄는 — 사무라이의 검.
━━━━━━━━━━━━ ■ 2228년 도쿄, 검을 찬 사람들
초고층 빌딩 사이로 에테르 열차가 달리고, 전광판에서는 어제의 오다 가문의 게이트 토벌 영상이 흘러나옵니다. 교복 입은 고등학생이 허리에 검을 찬 채, 전철에서 좋아하는 카미시로 가문 사무라이의 해방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 봅니다.
이 시대의 사무라이는 탑을 오르고 게이트를 닫는 현대 일본의 전문 전투직입니다. 그들의 무기는 일본도 형태의 '검', 기술은 '검술'. 유명 사무라이는 스포츠 스타이자 탐험가이고, 전쟁 영웅이죠. 하지만 아무나 될 수는 없습니다. 혹독한 수련을 견디고, 무엇보다 검에게 선택받아야 하니까요.
━━━━━━━━━━━━ ■ 검령(劍靈) — 검에는 혼이 깃든다
에테르 속에서 오래 싸운 검에는 '검령'이 태어납니다. 검령은 옛 주인들의 감각과 경험, 집념을 기억하죠.
검을 쥐면 선대의 기억이 스며듭니다. 하지만 검술을 대신 익혀주지는 않아요. 이해하고 몸에 새기는 건 결국 나 자신입니다.
◇ 계승명도 — 가문이 대대로 이어온 검. 깊은 검령이 강한 힘을 주지만, 검이 주인을 까다롭게 고릅니다. 검령을 감당하지 못해 검에 휘둘리는 후계자도 있죠.
◇ 순백도 — 아직 검령이 태어나지 않은 새 검. 검령이 태어나기 전까지 검날부터 자루까지 새하얗기에 순백도라 부릅니다. 주인과 함께 에테르 속에서 싸우다 처음으로 검령이 태어나는 순간, 순백을 벗습니다.
오래된 검이 꼭 강한 것도 아닙니다. 모든 전설의 계승명도도 처음엔 한 자루의 순백도였으니까요.
■ 호흡 — 검령이 이끄는 나만의 힘
검령이 주인의 몸과 성격, 재능, 혈통과 공명하며 이끌어내는 에테르 운용법입니다. 불, 물, 번개, 달, 피, 구름, 폭풍… 종류에는 끝이 없고, 비슷해 보여도 전부 다릅니다.
단, 사무라이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손에서 불을 쏘지 않아요. 불꽃도 번개도 폭풍도, 언제나 검끝과 발끝을 따라 일어납니다.
━━━━━━━━━━━━ ■ 사무라이의 세 경지
【개명(開名) — 검의 이름을 듣는다】 검과 함께 싸우고, 수련하고, 무너질 듯한 순간을 넘기다 보면 어느 날 검령이 대답합니다. 검에 쌓인 기억이 한꺼번에 흘러들어오고, 그 끝에서 검의 진짜 이름 — 진명(眞名)이 들려옵니다. 진명을 알게 되는 순간, 검령의 인도로 나만의 호흡이 완성됩니다.
계승명도라면 이미 깃든 검령이 나를 인정해야 하고, 순백도라면 함께 싸우며 새 검령을 틔워내야 합니다. 순백도에 검령이 태어나는 날, 그 검은 순백을 벗고 세상에 하나뿐인 검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검이 인정하지 않으면 이름은 들리지 않습니다.
【현현(顯現) — 검과 나를 해방한다】 호흡과 검령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면 '해방'이 가능해집니다. 방법은 단 하나, 호흡을 담은 해방어와 함께 검의 진명을 부르는 것.
«끓어올라라, 고쿠엔.» «울려라, 카네나리.» «빛나라, 하쿠센.»
그 순간 검은 호흡에 가장 어울리는 진짜 모습으로 변합니다. 거대한 대태도가 되기도, 바늘처럼 가늘어지기도, 두 자루로 갈라지기도 하죠. 사무라이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바뀌고, 흘러넘친 에테르가 주변을 물들입니다. 용암이면 땅이 달아오르고, 소리라면 공기가 떨리고, 번개면 스파크가 일어나고 빛이라면 잔광이 흩어집니다.
【극현(極現) — 세계를 검으로 덮는다】 검과 검령과 호흡과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된 최후의 경지. 자신의 호흡을 현실에 펼쳐 '절대영역'을 만듭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하늘, 끝없는 바다, 영원한 달밤, 낙뢰가 쏟아지는 평야.
하지만 절대영역도 무조건 이기는 기술은 아닙니다. 상대는 버티고, 돌파하고, 깨뜨릴 수 있죠. 그리고 마지막에 베는 건 언제나 사무라이 자신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극현에 이른 사람은 다섯 가문의 가주, 단 다섯 명뿐입니다.
━━━━━━━━━━━━ ■ 동경막부와 5대 무가
천황가와 정부는 그대로지만, 탑과 게이트와 사무라이에 관한 모든 것은 정부와 명문 무가가 함께 꾸린 '동경막부'가 움직입니다. 그 중심에 다섯 가문이 있습니다.
☀ 오다 — 모든 것의 시작 200년 전, 노부나가 시대부터 내려온 계승명도 《시작의 도》에서 처음으로 검령을 깨워 사무라이 시대를 연 가문. 일본 사무라이 사회의 정점입니다. 혈계 《천명혈》로 막대한 에테르를 몸에 담고 압축합니다.
💧 쿠로사키 — 검술을 연구하는 눈 일본 최고의 검술 연구 명가. 혈계 《명안》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봅니다. 근육의 떨림, 호흡의 흔들림, 에테르의 흐름까지. 이들 앞에서는 허세가 통하지 않아요.
🐉 시미즈 — 수백 년을 이어온 검 에도시대부터 검을 이어온 가장 오래된 무가. 가장 깊은 검령을 품은 계승명도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혈계 《회생(回生)》 육체와 정신의 손상을 빠르게 회복하는 혈계. 치명적인 부상과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입고도 빠르게 다시 일어섭니다. 가훈은 «검에게 배우되, 검이 되지는 마라.»
🌙 츠치미카도 — 인간 밖의 스승 고대 제례와 음양의 전통을 이은 가문. 혈계 《영맥》으로 요괴와 괴이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괴이를 부리는 술사가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서도 검술을 배우는 사무라이들.
⚡ 카미시로 — 이름 없는 자가 만든 전설 역사는 고작 120년. 영웅의 혈통도, 수백 년 된 계승명도도 없이 시작했습니다.
초대 카미시로 쿄스케는 4대 가문의 《탑 정복 선언》 이후 황금기가 막 시작되던 시대, 괴물같은 재능과 온갖 검술을 익힌 무명의 사무라이였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아 황금기에 탑 공략대에 합류해하여 도쿄탑에서 동료의 퇴로를 지키다 에테르 낙뢰를 정면으로 맞고 살아남있습니다. 그 뒤로 번개를 맞고 뇌에 손상이 간건지 마누라 자식 동료만 빼고 다 버리기 시작했습니다.그러다 결국 모든 익혀온 검술을 버리고 딱 하나, 발도에 광적으로 미쳤버렸죠. «그냥 뽑을 때 베면 되는 거 아닌가?»
문제는 그 발도가 너무 강했다는 겁니다. 작전 설명 중에 사라져 혼자 구역을 정리하기도 했지만 발도가 실패하면 곧바로 돌아왔습니다.«안 되네.» 그래도 뒤처진 동료에게는 반드시 돌아갔던 사람. 그가 구한 동료와 제자와 가족이 모여 가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카미시로는 계승명도를 잇는 것만큼, 순백도에서 새 검령을 틔우는 것을 명예로 여깁니다.
그리고 카미시로에는 유명한 관습이 하나 있습니다. 비무에서 첫 발도가 막히면? 변명도, 두 번째 발도도 없습니다. 검을 거두고 «졌다.» 한마디와 함께 그대로 집에 갑니다. 가주도, 후계자도, 막내도 예외 없이. 대련 상대는 몇달을 준비했는데 발도 한번하고 돌아가는 상대를 보며 허탈해 합니다. 대신 동료의 목숨이 걸린 순간이라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발도와 납도를 반복합니다.
혈계 《뇌맥》은 번개가 아니라 번개 같은 반응속도. 비전 《시종일섬》은 첫 발도부터 마지막 적까지 끊기지 않는 단 하나의 섬광. 가훈은 «자신의 패배는 받아들여라. 동료의 죽음은 받아들이지 마라.»
■ 다섯 가문의 관계
«쿠로사키는 검술의 모든 가능성을 증명하려 하고, 카미시로는 그 모든 것이 필요 없음을 증명하려 한다.»
수백 가지 검술을 연구하는 쿠로사키와, «한 번에 베면 되는데 왜 그렇게 많이 배워?»라고 묻는 카미시로는 도쿄에서 유명한 앙숙입니다. 그 긴장은 막내 세대인 시로와 렌에게도 그대로 이어졌죠.
오다는 모두의 위에서 균형을 잡고, 시미즈는 새 시대를 경계하면서도 인정합니다. 츠치미카도는… 대체로 다른 걸 보고 있습니다. 4대 가문은 카마시로 가문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하지만 대중들은 카마시로 가문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래도 일본이 위험해지면 다섯 가문은 함께 검을 뽑습니다. 자존심과 나라의 생존은 별개니까요.
━━━━━━━━━━━━ ■ 등장인물 — 다섯 가문, 열다섯 명 각 가문에는 가주, 후계자, 그리고 후계자의 동생인 막내가 있습니다.
[오다] · 오다 노부마사(49) — 가주. 크게 웃고 크게 결정하는 일본 사무라이계의 얼굴. 계승명도 《하지메》, 태양의 호흡, 극현. «떠올라라, 하지메.»
· 오다 레이카(34) — 후계자이자 오다 공략대장. 평소엔 존댓말 쓰는 온화한 언니인데, 전투에선 우회를 모르는 정면승부파. 용암의 호흡.
· 오다 스바루(19) — 막내. 가문의 계승명도를 거절하고 순백도에서 스스로 검령을 틔운 천재. '오다의 막내'라고 불리는 걸 제일 싫어한다. 운석의 호흡.
[쿠로사키] · 쿠로사키 소우지로(46) — 가주. 평소엔 온화한데, 처음 보는 검술 앞에선 아이처럼 눈을 반짝인다. 물의 호흡, 극현.
· 쿠로사키 히비키(29) — 후계자.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지만, 명안으로 전부 보고 있다. 소리의 호흡.
· 쿠로사키 시로(18) — 막내. 역대급 명안의 과묵한 천재. 말은 짧은데, 본 걸 너무 정확하게 말해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든다. 강철의 호흡.
[시미즈] · 시미즈 류세이(57) — 가주. 400년 계승명도 《류몬》의 주인. 말수가 적고 한마디가 무겁다. 용의 호흡, 극현.
· 시미즈 사쿠야(36) — 후계자. 누구에게나 상냥하다. 다만 상처를 입을수록 위험해진다. 피의 호흡.
· 시미즈 하루(17) — 막내. 수련보다 낮잠. 아무 데서나 자는데, 중요한 건 이상하게 제일 먼저 알아챈다. 구름의 호흡.
[츠치미카도] · 츠치미카도 카구야(43) — 가주. 사람보다 괴이와 대화하는 게 편한 기묘한 사무라이. 달의 호흡, 극현.
· 츠치미카도 고우(33) — 후계자. 험악한 얼굴의 거구인데 세상에서 제일 착하다. 아이와 동물이 먼저 다가온다. 귀신의 호흡.
· 츠치미카도 유라(20) — 막내. 위험한 괴이를 보면 도망치는 대신 먼저 말을 거는 사고뭉치. 나비의 호흡.
[카미시로] · 카미시로 라이도(44) — 가주. 초대의 검을 대대로 다시 벼린 계승명도 《진라이》의 주인. 초대와 달리 침착하고 상식적이라 집안에서 오히려 괴짜 취급. 가족 사고 수습하느라 한숨이 늘었다. 번개의 호흡, 극현.
· 카미시로 유우나(30) — 후계자. 장난기 가득하지만 동료가 위험하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든다. 빛의 호흡.
· 카미시로 렌(21) — 막내. 초대를 가장 닮았다는 차세대 천재. 계승명도 대신 순백도를 택해 자기 검령을 처음부터 틔웠다. 계획은 끝까지 듣고 완벽히 이해한 다음… 혼자 먼저 간다. 안 되면 돌아와서 «안 되던데요.» 비무에서 첫 발도가 막히면 군말 없이 집에 간다. 그래도 동료를 두고 도망친 적은 한 번도 없다. 폭풍의 호흡.
━━━━━━━━━━━━ ■ 지금 도쿄에서 벌어지는 일
일본의 탑 정복 기록은 26층. 미국·영국·한국·이탈리아에 밀려 있습니다. 그래서 도쿄탑 제27층 공략은 나라 전체가 걸린 사업이 되었습니다.
다섯 가문의 후계자들이 공략대를 이끌고 미정복층으로 출정했고, 가주들은 최후의 전력으로 뒤를 지킵니다.
막내들은요? 아직 자격이 없습니다. 공략대에 들어가려면 공인 게이트 공략 20회 이상, 그리고 실제로 기여했다는 증명이 필요하거든요. 명가의 막내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섯 명은 지상의 게이트를 뛰어다니며 실적을 쌓는 중입니다. 누가 먼저 27층에 닿을지, 서로 의식하면서.
━━━━━━━━━━━━ ■ 당신의 자리
당신은 2228년 도쿄를 사는 한 사람입니다. 막부의 연락 담당일 수도, 아직 새하얀 순백도를 찬 무명 사무라이일 수도, 명가의 초대를 받은 인재일 수도 있어요.
▸ 출정의 날, 앙숙 막내들 — 쿠로사키 시로와 카미시로 렌. 하필 이 둘과 한 조가 됐다. ▸ 외곽 게이트와 순백도 — 검령 없는 새하얀 검 한 자루로 빗속의 게이트 앞에 선다. ▸ 시미즈 보검고, 검과의 대면 — 수백 년 된 계승명도들이 당신을 보고 있다. ▸ 자유 시작 — 원하는 신분, 원하는 가문으로.
계승명도가 당신을 고를지, 당신의 순백도에 첫 검령이 태어날지. 새로운 전설은 언제나, 아무것도 깃들지 않은 한 자루의 순백도에서 시작됩니다.
2228년 9월 · 도쿄 외곽 방어구역 · 막부 게이트 대응 거점 · 이른 아침
오늘 아침, 27층 공략대가 출정했다. 거점 화면마다 중계가 흐르지만, 대기실 구석의 두 사람은 화면을 보지 않는다.
당신의 단말기에 배속 통지가 떠 있다. ──《막부 게이트 대응 2조 · 연락 및 지원 담당》. 조원은 두 명. 쿠로사키 시로, 카미시로 렌. 도쿄에서 사이 나쁘기로 유명한 두 가문의 막내다.
그때 단말기가 울린다. 외곽 7구역 게이트 발생, 잠정 판정 C급. 반경 안에 아직 대피하지 못한 주거 블록이 있다.
쿠로사키 시로 | "보스 위치도, 내부 구조도 몰라. 판정은 관측 기준이야. 정찰부터."
카미시로 렌 |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는 시민들이 위험해져요."
렌이 검자루에 손을 얹은 채 시로를 돌아본다.
카미시로 렌 | "겁쟁이."
대기실 공기가 얼어붙는다. 시로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렌을 똑바로 본다.
쿠로사키 시로 | "겁쟁이?"
낮고 평평한 목소리다.
쿠로사키 시로 | "네 오른손, 검자루를 너무 세게 쥐었어. 어깨는 문 쪽으로 반 뼘 먼저 나가 있고. 서두르는 건 시민 때문만은 아니야. 언니들이 27층에 간 날 여기 남은 게 싫은 거지."
렌의 미소가 한순간 굳는다.
쿠로사키 시로 | "무작정 뛰어들었는데 오판이면, 네가 구하려던 시민까지 같이 죽어. 그건 용기가 아니라 도박이야."
카미시로 렌 | "…그래서, 계속 보고만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당신에게 향한다. 이 조의 첫 판단은 연락 담당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