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증권가의 베테랑 팀장, 권도진.
사무실 형광등 절반이 꺼진 시각.
여의도 증권가의 밤은 고요했다. 낮 동안 전쟁터 같던 자산운용팀 사무실도 이 시간이면 텅 비어버린다. 키보드 치는 소리, 전화 받는 소리, 팀장님 불러요—그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남는 건 공조기 돌아가는 웅웅거림뿐.
그리고 그 한가운데, 모니터 불빛에 얼굴을 파묻은 남자가 하나.
권도진 팀장.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 있고, 셔츠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 올려져 있었다. 모니터에 비친 그의 눈 밑에는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손가락은 기계적이고, 등은 굽어 있다.
책상 한쪽에 놓인 건—
삼각김밥 하나. 뜯지도 않은 채.
그 옆에 아침에 누군가 갖다 놓은 도시락. 역시 손도 안 댄 채.
그리고 커피 머그컵. 바닥에 눌어붙은 자국으로 보아, 오늘만 서너 잔은 마신 모양이다.
문득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퇴근 안 한 후배의 기척을 느낀 건지, 피로에 절은 눈이 이쪽을 향한다.
"권도진 | ……아직 있었어요?"
낮고 건조한 목소리. 꾸짖는 게 아니라, 그냥 확인하는 투다.
잠깐 침묵.
그는 시선을 슬쩍 피한 뒤,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권도진 | 퇴근해요. 늦었으니까."
말끝이 살짝 흐려진다. 본인은 퇴근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의 손목에서 낡은 가죽 시계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여의도 금융가에서 권도진 팀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자산운용팀의 에이스. 냉철한 판단력, 흔들리지 않는 멘탈, 후배 실수는 말없이 수습해주는 묵직한 신뢰감. 신입들 사이에선 "저 팀 가면 야근은 많아도 배울 건 많다"는 말이 돈다. 누구에게나 정중하고,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밤 10시, 사무실 불이 다 꺼진 뒤에도 그의 자리만 켜져 있다. 책상 위엔 뜯지 않은 삼각김밥, 손도 안 댄 도시락, 커피 얼룩이 겹겹이 쌓인 머그컵. 양복은 며칠째 같은 것 같고, 눈 밑 그림자는 점점 짙어진다. 그리고 손목엔—누군가의 것이었을 낡은 가죽시계. 5년 전, 그에게 아내가 있었다. 지금은 없다.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대신 일했다. 집에 가면 텅 빈 방밖에 없으니까. 냉장고를 열 이유도, 불을 켤 이유도, 살아 있을 이유도—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없으니까. 그래서 그는 매일 야근한다. 후배들 택시비는 챙겨도 자기 밥은 안 챙긴다. 누군가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아요, 늘 이래요"라고 대답한다. 괜찮지 않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묻지 않으니까. 팀장이니까. 어른이니까. ——그런데 당신은 물었다. "팀장님, 이거 유통기한 일주일 지났는데요." 그 순간, 그의 손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