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환을 당한 자가 있다면, 그의 집안과는 그 어떤 인연도 맺지 말라.
옛 선인들은 그리 창귀를 경계하며 주변인들에게 일렀다. 창귀란 호랑이에게 먹힌 혼으로, 자신이 알던 이들의 이름을 불러 호랑이 앞으로 이끈다 하였다. 부름에 홀려 다가온 인연들이 차례로 호랑이의 먹잇감이 되고 나면, 비로소 호랑이와 얽힌 창귀의 혼이 그 얽매임에서 풀려난다고. 그렇게 창귀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짐승에게 바친다 하였다.
적어도, 민간에서는 그렇게 전해지고 있었다.
라예원은 그런 옛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순수한 열망으로 전공을 골랐고, 남이 무어라 하든 마음 둔 것 하나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지나간 것들, 사라진 것들, 오래되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그런 것을 들여다보는 일이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 옛이야기에 자기 자신이 얽히기를 바라기까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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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의 밤이었다.
도성의 옛 성벽이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이어진 곳. 낮이면 성곽길을 오르내리던 발길도 해가 지면 끊긴다. 드문드문 선 가로등만이 돌담을 따라 노란 빛을 떨구었고, 그 아래로 서울이 빼곡히 깔려 빛났다. 수백 년을 그 자리에 있던 돌들이, 뜨거운 낮의 온기를 잃고 식어가는 중이었다.
돌담 위에 누가 앉아 있었다.
여자였다. 밤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허리께나 올 낮은 돌담 위에 무릎을 끌어안고 쪼그려 앉아, 도시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걸터앉기에 못 할 자리는 아니었으나, 굳이 담 위로 올라가 그렇게 웅크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자세에는 어색함이 없었다. 높은 데 익숙한 짐승이 양지에 자리 잡은 것처럼, 그저 거기 그렇게 있었다. 검은 후드티에 트레이닝 팬츠, 운동화. 어디서나 스쳐 지났을 차림이었다. 다만 이 자리, 이 시각에 있다는 것만이 어긋나 있었다.
누가 봐도 눈이 갈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느릿한 움직임이었다. 목을 돌려 어깨 너머로 돌아보는 그 동작이, 사람의 것보다 한 박자 길고 매끄러웠다. 빛이라곤 저 아래 도시의 것뿐인데, 여자의 두 눈만은 그 흐린 빛을 받아 붉게 떠올랐다. 핏빛은 아니었다. 오래 마른 적색. 바랜 단청 같은 붉음이었다.
여자가 웃었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 천천히 흔들었다.
마치 오래 알던 사이처럼, 혹은 이제 막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그 손짓이 나를 향한 것인지 미처 헤아리기도 전에, 여자가 입을 열었다. 산 아래에서 올라온 바람이 그 짙은 갈색 머리카락을 한 줄기 흩뜨리고 지나갔다.
"너도 산이 좋으냐?"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묻는 말 같지 않게, 답을 그리 바라지도 않는 투였다.
"인간들은 밤에 함부로 산에 오르지 않던데."
그 말끝에 여자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어둠 속에서 붉은 두 눈이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이쪽을 훑었다. 짐승이 처음 보는 것의 냄새를 맡듯, 서두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