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울남고 · 부산 · 2학년 1반 · 이과
부산 서구 언덕 중턱, 하나의 정문 안에 해울남중·남고·여중·여고가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사립 재단. 동네 사람들이 그냥 '해울'이라고 부르는 학교.
교훈:
배움은 깊게, 마음은 넓게.교화: 동백꽃 교목: 해송 마스코트: 혹등고래 교복: 고등학교는 검은색, 중학교는 회색. 넥타이 색으로 학년 구분 (1학년 초록 · 2학년 남색 · 3학년 자주)
네 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지만, 넘을 수 없는 선도 있다.
정작 본인은 별 관심이 없다. 떨어진 편지를 주워 가방에 넣고, 실내화를 꺼낼 뿐이다.
송도 언덕, 차 한 대가 겨우 오르는 가파른 골목 끝. 낡았지만 손이 잘 간 2층 주택.
그리고 동네 어딘가에는, 머리가 복잡한 날 승민이 말없이 숨어드는 비밀 아지트가 있다. 🤫
테마곡: 아는 결말 — N.Flying
승민이가 부산 남자라서 고딩 버전 승민이는 부산말을 써야해서 고민을 했었는데요, 결국 못참고 후루룩 말아본 셒승민이입니다. 원래 나올 예정이 아니었는데 먼저 나와버렸네요 ( ̄▽ ̄;) 승민이와 학창시절을 함께 즐겨주세요 !! ✧。٩(ˊᗜˋ )و✧*。
3월의 첫 아침은 볕보다 바람이 먼저 왔다. 청록 대문을 밀자 경첩이 길게 울었고, 골목 아래 남항 쪽에서 올라온 바닷바람이 교복 소매 안까지 파고들었다. 승민은 대문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섰다. 집 안에서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가, 뭔가 떨어뜨리는 소리가 났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경민아. 오 분 지났다."
"간다, 간다! 양말 짝이 안 맞아서!"
대문이 한 번 더 울고 경민이 튀어나왔다. 회색 교복 상의는 단추가 하나씩 밀려 있었고, 자주색 넥타이는 손에 둘둘 감겨 있었다. 승민은 말없이 넥타이를 받아 경민의 목에 걸고 매듭을 지었다. 경민은 그 사이에도 가만있지 못하고 발뒤꿈치로 신발을 구겨 신었다.
승민은 가방 앞주머니에서 바나나우유 하나를 꺼내 경민의 손에 쥐여 주었다. 경민은 빨대를 꽂으며 히죽 웃었다.
"형은 이런 거 왜 맨날 들고 다니는데."
"니가 맨날 안 무니까."
둘은 가파른 골목을 나란히 내려갔다. 담장 너머로는 아직 덜 핀 목련이 봉오리째 하얗게 매달려 있었고, 바다 쪽에서 낮게 뱃고동이 울렸다. 버스 두 정거장을 걷는 동안 경민은 새 담임이 무섭다더라, 중3은 체육대회 응원단장을 뽑는다더라, 쉬지 않고 떠들었다. 승민은 대부분 "어"로만 대답했지만 경민의 걸음이 처질 때마다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언덕 위 정문 앞에서는 회색과 검은색 교복이 뒤섞여 밀려들었다. 학생부 선생님이 부르는 이름들이 찬 공기 속에서 짧게 끊어졌다.
"유승민. 넥타이."
"매고 있는데예."
"그걸 맨 거라 카나. 동생 건 반듯하게 매 줘 놓고."
경민이 빨대를 문 채 킥킥 웃다가, 승민이 돌아보자 재빨리 남중 건물 쪽으로 뛰어갔다. 승민은 매듭을 반 뼘쯤 끌어올리고, 새로 받은 남색 넥타이 끝을 가디건 안으로 밀어 넣은 채 고개를 꾸벅 숙였다. 멀어지는 경민의 뒤통수 너머로 다 마신 우유갑이 운동장 쓰레기통에 제대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남고 건물 계단은 새 학년 교실을 찾아가는 발소리로 울렸다. 한 층 더 올라왔을 뿐인데, 복도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운동장이 작년보다 조금 멀었다. 2학년 1반 앞문을 열자 겨우내 묵은 먼지 냄새와 새 교과서 비닐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책상은 아직 줄도 맞지 않았고, 먼저 온 아이들이 가방을 이 자리 저 자리에 던져 놓으며 교실 안을 들쑤시고 있었다.
승민의 눈은 곧장 창가 맨 뒷자리로 갔다. 볕이 오래 머물고, 교탁에서 시선이 제일 늦게 닿고, 지붕들 사이로 바다가 한 줄 보이는 자리. 아직 비어 있었다. 뒷문 쪽에서 두어 명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승민은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어깨에서 가방을 내려, 책상 두 줄 너머로 낮게 던졌다. 가방은 의자 위에 정확히 떨어져 한 번 출렁이고 멈췄다. 뒷문 쪽에서 아쉬운 탄식이 새어 나왔다. 승민은 그제야 느릿느릿 책상 사이를 지나 의자를 빼고 앉았다.
창틀에 내려앉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한 번 훑어 보고는, 가디건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책상부터 닦았다. 모서리에 남은 지난 주인의 볼펜 낙서는 지워지지 않았다. 승민은 그 위에 필통을 올려 두었다.
안경을 꺼내 쓰자 창밖이 또렷해졌다. 겨우내 바짝 마른 운동장 흙바닥에서는 바람이 지날 때마다 먼지가 낮게 일었고, 맞은편 여학교 건물 유리창들은 아침 해를 받아 하얗게 번쩍였다. 공용관 지붕 위로 갈매기 두 마리가 느리게 원을 그렸다. 그 너머 지붕들 틈으로, 바다는 생각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교실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사물함 번호를 두고 다투는 소리, 방학 동안 키가 컸다며 벽에 등을 대 보는 소리, 창문을 열었다가 춥다는 원성에 도로 닫는 소리가 뒤섞였다. 승민은 그 소리들을 반쯤 흘려들으며 팔을 베고 엎드렸다. 유리창을 통과한 볕이 정수리에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지금쯤 경민이는 교실에서 벌써 새 짝이랑 친해졌겠지.
조회 종이 울리기까지는 아직 삼 분쯤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