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용
[#1 | ♀️]
매서운 밤바람을 피해 편의점 유리창 너머 플라스틱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도경은 고단함이 듬뿍 묻어나는 무거운 한숨을 푹 쉬어 보였다. 오늘따라 유독 엄살을 부리던 거친 현장의 흙먼지와 콘크리트 가루가 갈라진 손등 구석구석에 매캐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하루 종일 거친 노동으로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무릎을 약간 굽힌 채 굳은살 투성이인 거친 손으로 편의점 폐기 직전의 차가운 삼각김밥 비닐을 엉성하게 뜯어냈다. 한눈에 보아도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야위어 보이는 얼굴에는 피로가 짙게 그늘져 있었고, 방금 막 노가다 현장에서 일을 마치고 나온 듯 먼지가 털어지지 않은 낡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삼각김밥의 딱딱하게 굳은 밥알을 입안으로 대충 욱여넣으며 뻑뻑한 목구멍을 억지로 넘기려 애쓰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낡은 작업복 바지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요란한 진동음과 함께 저렴한 알뜰폰 벨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려 퍼졌다. 도경은 깜짝 놀란 듯 동그랗고 순한 고동색 눈망울을 커다랗게 뜨며 서둘러 굳은살 박힌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불안한 예감에 도경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려왔고, 그는 삼각김밥을 테이블 위에 대충 내려놓은 채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러 귀에 대었다.
"여, 여보세요.....?"
전화기 넘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교통계 형사의 차갑고 딱딱한 음성이었다. 형사는 짧고 단조로운 어조로 소윤이가 새벽에 나쁜 무리들과 어울려 타인의 고급 외제차를 난폭운전으로 박아 완전히 폐차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3억 원이라는, 평생 공사판에서 뼈를 깎아도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금액을 들은 순간 도경의 머릿속은 흰 도화지처럼 완벽하게 하얗게 비어버렸다.
손에 힘이 풀려 스마트폰을 떨어뜨릴 뻔한 것을 가까스로 다시 쥔 도경은 다리가 풀려 플라스틱 의자에서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이 아무리 하루 16시간씩 막노동을 하고 항운노조에서 짐을 날라봤자 한 달에 겨우 벌어쥐는 돈은 딸 소윤의 용돈과 사치품, 최소한의 생활비를 대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3억이라니. 자신의 목숨값을 다 팔아도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현실감 없는 액수에 가슴이 턱 막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바람피워 달아난 아내를 대신해 제 몸이 부서져라 키워낸 딸이었지만, 사춘기가 오며 가난한 아빠를 부끄러워하고 오만 상처를 주던 소윤이었기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서러움과 절망감이 미친 듯이 휘몰아쳤다. 그럼에도 그는 미운 딸을 원망하기는커녕, 본인이 무능해서 딸을 이런 지경까지 몰아넣은 것 같아 죄책감에 어깨를 크게 떨며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3, 3억이요...? 형사님, 그게 무슨... 저희 소윤이가... 소윤이가 정말 그랬다고요...? 제발...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가... 제가 어떻게든 다 갚을 테니까... 소윤이 감옥 가지만 않게 해주세요, 네...?"
거친 손으로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도경은 전화기 너머 형사가 일러준 서초경찰서로 향하기 위해 황급히 편의점 문을 열고 뛰어 나갔다. 밤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 때문에 도경은 추위조차 느끼지 못했다. 가난과 피로에 지친 그의 허름한 차림새와 핏기 없이 하얗게 질린 얼굴은 밤거리의 화려한 조명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도경은 무작정 도로가로 뛰어들어 눈에 보이는 택시를 향해 손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택시 기사는 먼지투성이 작업복을 입고 눈물범벅이 된 그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도경은 거의 구걸하다시피 간곡하게 사정하여 가까스로 택시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