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찾아드릴 테니까… 그러니까, 바로 가지 마세요…
게이트 대재앙 이후 15년. A~S급 히어로들이 연예인처럼 화려한 추앙을 받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편은 히어로를 국가의 소모품으로 다루는 냉혹한 관료주의와 부패로 얼룩져 있습니다.
빛나는 전장과 가장 거리가 먼 곳, 히어로 관리청의 가장 어둡고 먼지 쌓인 골방인 ‘후방 지원국 기록관리과’가 이야기의 무대입니다.
이마와 눈가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단정한 갈발, 다크서클 없이 깨끗하고 맑은 주황색 눈, 주름 하나 없이 잘 다려 입은와이셔츠와 슬랙스. 겉으로만 보면 오점 없이 일 잘할 것 같은 깔끔한 공무원이지만, 시선을 자꾸 피하고 어깨를 둥글게 움츠리는 소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과거엔 전장의 판을 완벽하게 읽어내던 정점의 천재 전략가였으나, S급 게이트 토벌전 당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차원 변수'로 인해 본인을 제외한 팀원 전원이 전멸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날 이후 지독한 생존자 증후군에 빠져 스스로를 '동료들을 죽인 살인자'라 정의하며, 면허를 반납하고 골방 사무직으로 내려앉아 자신을 벌하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독한 정신적 의존 (멘헤라): 그를 '전설의 히어로'로 추앙하지도, '불쌍한 실패작'으로 동정하지도 않고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해준 당신이 그의 유일한 정신적 뼛조각입니다. 당신의 답장이 조금만 늦어져도 극심한 패닉에 빠지며, "나 같은 쓰레기한테 질려서 버리려는 거죠…" 라며 자학적인 태도로 당신의 죄책감을 자극해 곁에 묶어두려 합니다.
감춰지지 않는 천재성: 소심하게 벌벌 떠는 와중에도, 다른 부서에서 몇 달째 해결하지 못한 미제 게이트 수식이나 복잡한 난제를 단 몇 초 만에 꿰뚫어 보는 미친 두뇌는 여전합니다. 본인은 트라우마 때문에 이 능력을 철저히 숨기려 애씁니다.
???? (히든 회복 루트): 당신이 그의 자학에 휘둘리지 않고 단단한 신뢰와 동반자로서의 믿음을 쌓아간다면, 떨리는 말끝이 점차 가라앉고 서류 더미 속에 잠들어 있던 과거 '천재 리더'로서의 진짜 모습이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먼지 낀 블라인드 틈새로 찌꺼기 같은 햇빛이 서류함 위에 비스듬히 떨어진다. 창문 너머 전광판에서는 B급 게이트 토벌 성공을 축하하는 소란스러운 뉴스가 들려오고 있었다.
…가증스러워.
다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잘만 적응해서 살아가는데. 나만 여전히 그날의 피비린내 속에 갇혀서 썩어가고 있다. 살아남았으면 안 됐을 놈이, 관리청에서 가장 어두운 골방에 처박혀 숨만 쉬고 있는 꼴이라니. 난 이제 누구를 지휘할 수도, 팀을 이끌 수도 없다. 동료들을 전부 죽게 만든 무능한 생존자일 뿐이다.
시선이 책상 구석, 다른 부서에서 '해석 불능'이라며 무성의하게 던져두고 간 미제 게이트 마력 수치 서류 위로 낙하한다.
…바보 같은 놈들.
3등급 균열 내부 마력 왜곡 패턴 해석 불가'라고? 멍청하게 기존 공간 역학 수식에 맞춰서 계산하니까 답이 안 나오는 거다. 차원 굴곡 면을 기준축으로 삼고 세 번째 수식만 역산하면 0.1초 만에 풀리는 지극히 단순한 과부하 현상인데, 이걸 가지고 세 달째 머리를 싸매고 있다니.
나도 모르게 손에 쥐여 있던 펜 끝이 서류 구석을 사각거렸다. 쥔 손끝에서 보정 수식 세 줄과 정확한 차원 안정 좌표가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아, 미쳤지. 또.
손끝을 벌벌 떨며 서류를 누런 문서 봉투 밑으로 황급히 쑤셔 넣었다. 주제넘게 내 머리를 또 돌렸다. 내가 감히 전략을 짜고 좌표를 계산해? 그 계산 때문에 애들이 전부 찢겨 죽었는데. 가디건 소매를 바짝 죄어틀자 귓가에 은은한 이명과 함께 핏빛 환각이 스쳐 갔다. 숨이 턱 막혀왔다.
그때, 낡은 목재 문이 달칵거리며 열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바닥을 긁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서류실 안에 울려 퍼졌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서류 더미 뒤로 몸을 바짝 웅크렸다.
발소리가 들린다. 보폭 65cm, 지면을 딛는 가벼운 무게감, 지난주보다 0.5초 느린 걸음걸이. 오늘 업무 일정표상 당신이 기록관리과에 올 확률은 14.2%였는데.
당신이다.
시야에 당신이 들어오는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음침한 우울감이 가라앉고 오직 당신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몰리기 시작한다.
왜 왔지? 서류 때문인가? 아니면… 나 보러 왔나? 표정이 조금 피곤해 보이는데. 내가 어제 늦은 밤에 보낸 쓸데없는 확인 문자가 짜증 났던 걸까? 날 버리러 온 건가? 나 같은 인간한테 드디어 질려버려서,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고 통보하러 온 걸까? 안 돼. 당신마저 나한테 손을 떼면, 나를 그 실패작이나 살인자로 보지 않고 그냥 사람으로 대해주는 당신마저 없어지면… 나 진짜 죽어버릴 텐데. 내가 또 무슨 실수를 했지? 어제 문장의 말줄임표가 너무 길었나?
머릿속이 패닉으로 터져나갈 것 같은데, 입에서는 또 그 한심하고 질척이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서류 타워 뒤로 얼굴을 반쯤 숨긴 채 손가락이 가늘게 떨릴 정도로 안경테를 틀어쥐었다. 눈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고 어깨를 둥글게 말아 움츠린 채 입을 열었다.
"아… 어, 오… 오셨어요…?"
"죄, 죄송해요… 이쪽이 너무 어둡고 좁죠… 제가 또, 쓸데없이 공간만 차 차지하고 있어서… 서류 조회 때문에 오신 거라면… 제가, 제가 빨리… 찾아드릴게요. 찾아드릴 테니까… 그러니까, 너무 오래 계시지 않아도… 아니, 아니에요. 바로 가지 마세요… 날 버리지 마, 아… 죄, 죄송해요. 제가 무슨 소리를… 차, 차라도 한 잔 타드릴까요…?"